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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해외동포의 고국, 모국, 조국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루턱에 섰다. 바다 건너 떠돌이는 무척 쓸쓸하고 막막해진다.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기도 하고, 외로운 그림자를 밟으며 나는 누구인가를 되묻기도 한다. 변방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의 서글픔이다.   미국 땅에 살고 있는 나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무엇인가? 고국, 모국, 조국,내 나라, 우리나라…. 다양한 명칭이 있다. 물론 그 의미는 조금씩 다르다. 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고국(故國)= 주로 남의 나라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조상 때부터 살던 나라를 이르는 말. ▶모국(母國)= 자기가 태어난 나라, 흔히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사람이 자기 나라를 가리킬 때 쓰는 말. ▶조국(祖國)=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 자기의 국적이 속해 있는 나라를 뜻하기도 한다.   나는 45년째 미국에 살고 있다. 그만큼 떠나온 고향으로부터 멀어졌고, 돌아가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에 가보면, 말이 시원하게 잘 통하는 것 빼고는 완전히 타국이나 다를 바 없다. 한국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부를까? 재미동포, 교포, 교민, 재미한인, 한민족, 한인 디아스포라 등 다양한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한국 정부의 공식 용어는 ‘재외동포’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에서 본 관점이고, 정작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각은 간단하지 않다. 긴 세월 고달픈 해외 떠돌이답게 우리의 정체성은 이리저리 복잡하다. 법적으로는 미국 시민권자, 즉 독수리 여권을 가진 미국인이지만, 생물학적으로나 심정적으로는 골수 토종 한국인이다. 우리말로는 재외동포 또는 재미 한인이고, 영어로는 코리안-아메리칸이다. 코리안에 방점을 찍느냐, 아메리칸에 악센트를 두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내가 정체성 문제에 유달리 관심을 갖는 것은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란 우리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민 1세들이야 그렁저렁 살다 사라지면 그만이겠지만, 우리 후손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1세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우리 2세들의 형편은 복잡하다. 2세들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한국계 미국인이다. 본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미국사람이다”라고 대답하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에서는 우리 2세, 3세들도 동포로 계산하고 싶어 한다. 숫자가 곧 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와 우리 아이들 사이에 이런저런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가령, 중요한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미국과 한국이 맞붙었다면, 나는 당연히 한국을 응원하겠지만, 아이들은 미국을 응원하거나 약간의 갈등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자꾸만 고민하게 된다. 실제로 고약한 부딪침이 도처에 깔려 있다. 우리의 명칭이나 이중국적 같은 정책적 배려보다 훨씬 중요한 근원적 문제다. 특히 예술에서는 한결 본질적이다.   그런 갈등에서 떠오르는 것이 ‘디아스포라’라는 다소 애매하지만 포괄적인 개념이다. 다인종,다문화,다언어로 이루어진 ‘짬뽕 사회’ 미국에 살면서 조국, 모국, 고국 등을 생각하다 보면 만나는 낱말이 디아스포라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어쨌거나 한국 정부의 해외동포 정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재외동포청을 신설한다고 떠들썩하기에 잔뜩 기대를 걸었는데,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국회에서 다른 용건으로 싸움박질이 요란하더니 까먹은 모양이다. 참 답답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해외동포 고국 조국 모국 고국 모국 해외동포 정책

2022-12-29

[기고] 동포처(청), 독립적 역할 필요하다

한국과 해외 한인사회를 연결, 한인들의 권익 신장을 지원하게 될 동포처(청) 설립을 염원한지도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민이 급증한 1980년대만 해도 해외 한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식은 ‘시집 보낸 딸’ 처럼 전 근대적이었다. 일단 친정을 떠났으니 알아서 시집살이하라는 것이었다. 또 ‘고국이 싫어 떠났으니 그곳에서 적응하며 살라’는 일부 부정적인 정서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세계화의 바람이 불면서 이런 의식에도 전환점이 생겼다. 더욱이 해외 이민이 증가하면서 그들의 한국 내 재산권과 병역 문제 등이 부각됐고, 반대로 해외 동포들의 역이민도 늘면서 이들에 대한 체류 신분 문제 등도 불거졌다.     1990년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 정부도 해외 동포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  4·29 LA폭동이 발생해 한인들이 피땀 흘려 마련한 재산이 폭도들에 의해 잿더미로 변하는 참혹한 일도 겪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한인들은 미국이나 한국 정부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지원 등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인들의 좌절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혼란기를 지나며 한인사회는 미국 내 정치력 신장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에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이런 필요성으로 인해 ‘한미문화교류재단’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고, 이 단체가 주축이 되어 한인회를 비롯한 많은 한인 단체들의 후원하에 1994년 8월 ‘교민청 설립 추진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국 정부와 국회에 교민청 설립을 강력히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금 해외 한인 숫자는 750만 명을 넘어섰고 거주국 내에서의 경제와 정치적 영향력도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성장했다. 이런 시기에 윤석열 정부의 동포청(처) 신설 추진은 시의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정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는 대사관이 있고 주재국 거주 한인을 위한 영사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관된 해외동포 정책 수립,  2세 교육과 병역문제, 각종 문화 이벤트 등 다양한 업무를 외교부 한 부처에서 모두 관장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는 사자 새끼를 조그마한 울타리 안에서 기르면서 정상적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동포처(청)과 관련해서 한 가지 고언을 하자면, 전 세계 한인사회를 위한 정부 기관은 독립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서 이름이 ‘동포청’이 됐건 ‘동포처’가 됐건 간에 총리 직속의 독립된 부서로 출범해야 효과적인 행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기존처럼 정부 12개 부처에서 해외 동포에 관한 예산을 쪼개어  집행하면 예산 집행의 효율성도 떨어지고 부처 간의 유기적 집행 능력의 탄력성도 떨어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부서에서 해외 동포사회의 모든 것을 전담해 예산 확보와 의결권, 정책 결정과 집행 능력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동포처(청)의 출범은 해외 한인들의 숙원이다. 해외 동포들이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한 민족의 위상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기관의 조속한 탄생을 기대해 본다. 이영송 / 한미문화 교류재단이사장기고 동포처 독립 해외 한인사회 해외동포 정책 세계 한인사회

2022-09-14

[기고] 동포처(청), 독립적 역할 필요하다

한국과 해외 한인사회를 연결, 한인들의 권익 신장을 지원하게 될 동포처(청) 설립을 염원한지도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민이 급증한 1980년대만 해도 해외 한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식은 ‘시집 보낸 딸’ 처럼 전 근대적이었다. 일단 친정을 떠났으니 알아서 시집살이하라는 것이었다. 또 ‘고국이 싫어 떠났으니 그곳에서 적응하며 살라’는 일부 부정적인 정서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세계화의 바람이 불면서 이런 의식에도 전환점이 생겼다. 더욱이 해외 이민이 증가하면서 그들의 한국 내 재산권과 병역 문제 등이 부각됐고, 반대로 해외 동포들의 역이민도 늘면서 이들에 대한 체류 신분 문제 등도 불거졌다.     1990년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 정부도 해외 동포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  4·29 LA폭동이 발생해 한인들이 피땀 흘려 마련한 재산이 폭도들에 의해 잿더미로 변하는 참혹한 일도 겪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한인들은 미국이나 한국 정부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지원 등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인들의 좌절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혼란기를 지나며 한인사회는 미국 내 정치력 신장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고, 또 한편으로는 한국 정부에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이런 필요성으로 인해 필자가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미문화교류재단’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졌고, 이 단체가 주축이 되어 한인회를 비롯한 많은 한인 단체들의 후원하에 1994년 8월 ‘교민청 설립 추진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한국 정부와 국회에 교민청 설립을 강력히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금 해외 한인 숫자는 750만 명을 넘어섰고 거주국 내에서의 경제와 정치적 영향력도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성장했다. 이런 시기에 윤석열 정부의 동포청(처) 신설 추진은 시의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정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는 대사관이 있고 주재국 거주 한인을 위한 영사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일관된 해외동포 정책 수립,  2세 교육과 병역문제, 각종 문화 이벤트 등 다양한 업무를 외교부 한 부처에서 모두 관장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는 사자 새끼를 조그마한 울타리 안에서 기르면서 정상적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동포처(청)과 관련해서 한 가지 고언을 하자면, 전 세계 한인사회를 위한 정부 기관은 독립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서 이름이 ‘동포청’이 됐건 ‘동포처’가 됐건 간에 총리 직속의 독립된 부서로 출범해야 효과적인 행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기존처럼 정부 12개 부처에서 해외 동포에 관한 예산을 쪼개어  집행하면 예산 집행의 효율성도 떨어지고 부처 간의 유기적 집행 능력의 탄력성도 떨어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부서에서 해외 동포사회의 모든 것을 전담해 예산 확보와 의결권, 정책 결정과 집행 능력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동포처(청)의 출범은 해외 한인들의 숙원이다. 해외 동포들이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한 민족의 위상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기관의 조속한 탄생을 기대해 본다.            이영송 / 한미문화 교류재단이사장기고 동포처 독립 해외 한인사회 해외동포 정책 세계 한인사회

2022-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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